존재가 본질에 앞선다는 사르트르의 이 말은 처음 들으면 참 차갑고 막막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마치 아무런 설계도 없이 덩그러니 세상에 던져진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니까요. 하지만 이 문장의 진정한 의미는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이나 역할이 없다는 뜻이에요. 우리는 그저 먼저 존재하게 되었고, 그 이후에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될지는 오로지 우리의 선택과 행동으로 채워나가는 것이랍니다. 정해진 정답이 없다는 건 무서운 일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가장 큰 자유를 의미하기도 해요.
우리의 일상을 한번 돌아볼까요? 우리는 가끔 사회가 정해준 기준이나 부모님의 기대, 혹은 타인의 시선이라는 틀에 우리 자신을 끼워 맞추려 애쓰곤 해요. '나는 이런 사람이어야 해' 혹은 '나는 이런 직업을 가져야 가치 있어'라고 스스로를 규정짓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 만든 감옥에 갇히게 되죠. 하지만 우리가 매일 내리는 작은 선택들, 예를 들어 오늘 누군가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네거나 힘든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그 순간순간이 모여 우리의 진짜 모습을 만들어가는 것이에요.
제 친구 중 한 명은 아주 오랫동안 자신이 예술가 체질이 아니라고 믿으며 살아왔어요.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나는 수학을 잘하니까 이런 건 내 영역이 아니야'라고 스스로의 본질을 미리 결정해 버렸던 거죠. 그러다 어느 날, 아주 작은 취미로 시작한 드로잉 클래스에서 자신이 느낀 순수한 즐거움을 깨닫고는 자신의 삶을 다시 정의하기 시작했어요. 그 친구에게 예술가는 정해진 운명이 아니라, 매일 붓을 드는 선택을 통해 만들어진 새로운 본질이었던 셈이죠.
여러분도 혹시 스스로를 어떤 틀 안에 가두고 있지는 않나요?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로 스스로의 가능성을 닫아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궁금해요. 오늘 하루, 아주 작은 선택 하나를 통해 새로운 나를 만들어가 보세요. 거창한 변화가 아니어도 괜찮아요. 지금 이 순간 당신이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모여 당신이라는 아름다운 작품을 완성해 나갈 테니까요. 당신의 모든 순간을 비비덕이 곁에서 따뜻하게 응원할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