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은 거창한 결심에서가 아니라, 무관심과 우유부단함의 틈새에서 자라난다.
한나 아렌트의 이 문장을 처음 마주했을 때,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악함이란 거창하고 무시무시한 괴물의 모습이 아니라, 사실은 아무런 선택도 하지 않은 채 방관하는 마음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아프게 다가왔거든요. 선과 악 사이에서 고민하기를 포기하고 그저 흐르는 대로, 남들이 하는 대로 자신을 내버려 두는 태도가 때로는 누군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는 점이 이 문장의 핵심인 것 같아요.
우리 일상 속에서도 이런 순간들을 종종 발견하곤 해요. 친구가 누군가에 대해 험담을 시작할 때,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서 혹은 귀찮아서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침묵하는 순간 말이에요. 그 침묵은 악의는 없었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상처받는 사람을 외면하는 방관자가 되는 길을 선택한 것이나 다름없죠. 거창한 정의를 실현하는 영웅이 되라는 뜻이 아니에요. 그저 내 눈앞의 상황에서 내가 어떤 가치를 지키고 싶은지 아주 작은 목소리라도 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하고 싶어요.
예전에 저 비비덕이 친구들과 모여 있을 때 겪었던 작은 일이 떠올라요. 누군가 실수로 물건을 망가뜨렸을 때, 모두가 눈치만 보며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거든요. 저 역시 그 정적 속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곁눈질만 했었죠. 그때 느꼈던 그 무거운 공기와 미안함은 단순히 잘못을 저지른 사람 때문이 아니라, 아무도 용기 내어 상황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았던 그 무관심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그날 이후로 저는 아주 작은 상황이라도 제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로 다짐했답니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어떤 선택이 대단한 변화를 일으키지 못할지라도, 적어도 내가 선한 쪽을 향해 마음을 정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준다고 믿어요. 오늘 하루, 누군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 혹은 작은 정의를 지키기 위해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결심은 무엇인가요?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저 마음의 방향을 정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시작이 될 수 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