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렌 키에르케고르의 이 문장을 처음 마주했을 때, 제 마음 한구석이 찌릿하며 아려오는 것을 느꼈어요. 절망의 가장 흔한 형태가 바로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하는 것이라니, 이보다 더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한 통찰이 있을까요? 우리는 종종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혹은 사회가 정해놓은 성공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진짜 내 모습 위에 두꺼운 가면을 덧씌우곤 합니다. 그 과정에서 진짜 나를 잃어버린 채 껍데기만 남은 듯한 공허함을 느낄 때, 우리는 그것을 단순한 우울함이 아닌 깊은 절망이라 부르게 되는 것 같아요.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이런 모습은 너무나 자주 발견됩니다. 직장에서 유능한 직원으로 보이기 위해 내 감정을 억누르고, 친구들 사이에서 밝은 사람으로 남기 위해 슬픔을 숨기는 일들이 그렇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과 화려한 일상을 가졌더라도, 정작 그 안의 내가 숨을 쉬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행복이라 말하기 어려울 거예요. 마치 예쁜 옷을 입고 있지만 속은 텅 비어버린 인형처럼, 우리는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곤 합니다.
제 친구 중 한 명의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그 친구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있었지만, 늘 눈빛이 흐릿하고 지쳐 보였어요. 알고 보니 그 친구는 자신이 정말 사랑하는 그림 그리는 일을 포기하고, 오로지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회계사가 된 상태였거든요. 친구는 매일 아침 출근길마다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연기하고 있다는 생각에 깊은 무력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에게 필요했던 건 더 높은 연봉이나 승진이 아니라, 잃어버린 자신의 조각을 찾아가는 용기였을 거예요.
여러분, 혹시 지금 무언가에 짓눌려 숨이 가쁘지는 않나요? 남들의 박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느라 정작 내 마음이 내는 작은 신음 소리를 못 듣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았으면 좋겠어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조금 서툴고 투박하더라도,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존재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평온을 찾을 수 있으니까요. 오늘 하루만큼은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당신 자신에게 '지금 그대로도 충분히 괜찮아'라고 다정하게 말해주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랄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