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이 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깊은 절망이니,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이 구원의 시작이다.
소렌 키에르케고르가 남긴 이 문장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음 한구석이 찌릿해지곤 해요. 절망의 가장 흔한 형태가 바로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하는 것이라니, 정말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한 통찰이지 않나요? 우리는 종종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혹은 사회가 정해놓은 정답에 나를 맞추기 위해 진짜 내 모습은 꾹꾹 눌러 담은 채 살아가곤 합니다. 그렇게 가면을 쓰고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속에 깊은 공허함과 알 수 없는 슬픔이 차오르는데, 그것이 바로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절망의 모습일지도 몰라요.
우리의 일상을 한번 돌아볼까요?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억지로 밝은 척 웃음을 지어본 적이 있나요? 혹은 내가 정말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도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애써 괜찮은 척하며 버틴 적은 없었나요? 저 비비덕도 가끔은 귀여운 모습 뒤에 숨겨진 서툰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 억지로 씩씩한 척할 때가 있어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마음은 점점 무거워지고, 진짜 나를 잃어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답니다.
얼마 전 제 주변의 한 친구 이야기가 떠올라요. 그 친구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있었지만, 매일 아침 출근길마다 눈물을 참느라 힘들었다고 고백했어요. 남들이 보기엔 완벽한 삶이었지만, 정작 그 친구의 내면은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예술을 포기한 상실감으로 가득 차 있었거든요.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고 진짜 자신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 친구가 자신의 진심을 마주하고 작은 취미부터 다시 시작했을 때, 비로소 얼굴에 생기가 도는 것을 보며 저는 깊은 울림을 받았답니다.
여러분, 오늘 하루만큼은 타인의 시선이라는 무거운 옷을 잠시 내려놓아 보면 어떨까요? 내가 무엇을 할 때 가장 나답게 빛나는지, 어떤 순간에 진심으로 행복한지 스스로에게 물어봐 주세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조금 서툴고 투박하더라도 진짜 나의 모습을 인정하고 사랑해 주는 것, 그것이 절망에서 벗어나 진정한 평온을 찾는 첫걸음이니까요. 오늘 밤 잠들기 전, 거울 속의 나에게 수고했다고, 그리고 너 그대로도 충분히 아름답다고 따뜻한 한마디를 건네주는 건 어떨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