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란 와츠의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잠시 멈춰 서서 생각에 잠겼어요. 나 자신을 정의하려 애쓰는 것이 마치 자신의 치아를 깨물려는 시도와 같다는 비유는 정말 기발하면서도 뼈아픈 진실을 담고 있지 않나요? 우리는 끊임없이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의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내리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는 고정된 물체가 아니라, 매 순간 흐르는 강물처럼 변화하고 움직이는 생명력 그 자체예요. 규정하려는 순간, 우리는 살아 움직이는 본연의 생동감을 놓치고 맙니다.
우리의 일상을 한번 들여다볼까요? 우리는 가끔 스스로를 '성실한 사람', '실패한 사람', 혹은 '부족한 사람'이라는 딱지 속에 가두곤 합니다. 어제는 아주 작은 실수 하나 때문에 스스로를 '무능한 사람'이라고 정의하며 자책하기도 하죠. 하지만 이런 정의들은 마치 꽉 끼는 신발처럼 우리의 성장을 방해합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어떤 틀에 가두는 순간, 그 틀 밖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까지 함께 가두어 버리기 때문이에요.
제 친구 중 한 명은 오랫동안 자신을 '결단력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믿어왔어요. 그래서 새로운 도전을 앞둘 때마다 늘 망설임과 두려움에 갇혀 있었죠.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가 자신의 성격이 아니라 단지 '신중하게 고민하는 과정'을 겪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자신을 정의하려는 노력을 멈추고, 그저 그 순간의 감정과 상황을 흐르듯 받아들이기 시작하자 친구의 눈빛은 훨씬 자유로워졌답니다. 스스로를 정의하려는 이빨을 내려놓으니, 비로소 세상을 온전히 맛볼 수 있게 된 것이죠.
오늘 하루, 여러분을 괴롭히는 수많은 '나는 ~한 사람이다'라는 정의들을 잠시 내려놓아 보는 건 어떨까요? 여러분은 정의될 수 있는 문장이 아니라, 매 순간 새롭게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과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 느껴지는 감정, 눈앞에 보이는 풍경, 그리고 당신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을 그저 있는 그대로 느껴보세요. 당신은 정의되는 존재가 아니라, 경험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비비덕이 당신의 그 자유로운 여정을 언제나 응원할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