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이 문장을 처음 마주했을 때, 저는 잠시 숨을 고르게 되었어요. 불평등의 가장 나쁜 형태가 바로 불평등한 것들을 억지로 똑같게 만들려는 시도라는 말은, 단순히 숫자를 맞추는 것이 정의가 아니라는 깊은 울림을 줍니다. 우리는 흔히 모두에게 똑같은 기회나 똑같은 보상을 주는 것이 공정하다고 믿곤 하지만, 사실 각자가 처한 상황과 필요는 모두 다르잖아요. 진정한 정의는 차이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차이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각자에게 필요한 만큼의 무게를 실어주는 일이라는 것을 이 문장은 속삭여주고 있어요.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이런 모습은 자주 발견됩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모든 학생에게 똑같은 높이의 받침대를 나누어 주는 상황을 상상해 보세요. 키가 큰 친구에게는 필요 없는 것이고, 키가 아주 작은 친구에게는 여전히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이 될 수 있죠. 모두에게 똑같은 것을 나누어 주었으니 공평하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정작 아무도 경기를 제대로 즐길 수 없게 된 거예요. 진짜 공정함은 키가 작은 친구에게는 더 높은 받침대를, 키가 큰 친구에게는 낮은 받침대를 제공하여 모두가 같은 높이에서 경기를 볼 수 있게 돕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저 비비덕도 가끔은 모든 친구에게 똑같은 위로를 건네야 한다는 강박에 빠질 때가 있어요. 슬픈 친구에게는 따뜻한 포옹이 필요하고, 지친 친구에게는 조용한 응원이 필요하며, 화가 난 친구에게는 그 마음을 들어줄 인내심이 필요하죠. 모두에게 똑같은 '괜찮아'라는 말만 반복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상대방의 구체적인 아픔을 외면하는 또 다른 불평등이 될지도 몰라요. 각자의 마음 모양에 꼭 맞는 위로를 찾는 과정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는 순간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주변을 한번 가만히 살펴보는 건 어떨까요? 누군가에게 똑같은 기준을 들이대며 재촉하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겉모습만 똑같이 맞추기 위해 소중한 개성을 지워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에요. 상대방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에 필요한 적절한 온기를 나누어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세상을 더 따뜻하고 정의롭게 만드는 첫걸음이 될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