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일드의 이 문장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일렁이는 기분이 들어요. 무언가를 정의한다는 것은 그 대상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하나의 틀 안에 가두는 일과 같거든요. 우리는 누군가를 '내성적인 사람'이라거나 '일 못하는 사람'이라고 이름 붙이는 순간, 그 사람이 가진 수만 가지의 다른 면모들을 놓치게 되곤 해요. 정의라는 단어는 명확함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존재가 가질 수 있는 넓은 세상을 좁은 울타리 속에 가두어 버리는 힘을 가지고 있답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이런 일은 정말 자주 일어나요. 저 비비덕도 가끔은 제 자신을 '겁 많은 오리'라고 정의해 버리고 싶을 때가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저를 하나의 단어로 정의해 버리면, 제가 가진 용기나 호기심, 그리고 따뜻한 마음까지도 모두 '겁쟁이'라는 틀 뒤로 숨겨버리게 되는 것과 같죠. 친구를 만날 때도 마찬가지예요. '그 친구는 차가운 사람이야'라고 단정 짓는 순간, 그 친구가 나에게 보여줄 수 있는 따뜻한 미소나 다정함을 경험할 기회조차 스스로 차단해 버리는 셈이거든요.
얼마 전, 제가 아주 친한 친구를 보며 느꼈던 경험이 떠올라요. 그 친구는 늘 조용하고 말수가 적어서 저는 그저 '수줍음이 많은 아이'라고만 생각했었죠. 그런데 어느 날, 친구가 길가에 버려진 작은 아기 새를 발견하고는 누구보다 정성스럽게 돌보는 모습을 보게 되었어요. 그 순간 깨달았답니다. 그 친구를 '수줍음'이라는 단어 하나로 정의했던 제 시선이 얼마나 그 친구의 아름다운 내면을 제한하고 있었는지를요. 정의 내리지 않았더라면 저는 그 친구의 커다란 사랑을 발견할 수 있었을 거예요.
오늘 하루, 당신을 둘러싼 사람들과 당신 자신을 너무 쉽게 정의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돌아보셨으면 좋겠어요. 누군가에게, 혹은 자신에게 '너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딱지를 붙이는 대신, 그저 있는 그대로의 흐름을 지켜봐 주는 건 어떨까요? 틀에 가두지 않은 채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상대방의 진정한 빛과 나의 숨겨진 가능성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오늘 당신이 마주할 세상이 정의라는 한계를 넘어 훨씬 더 넓고 다채롭기를 저 비비덕이 곁에서 응원할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