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일드의 이 짧은 문장은 마치 좁은 틀 안에 갇힌 작은 새를 떠올리게 해요. 무언가를 정의한다는 것은 그 대상의 아름다움을 설명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대상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과 복잡한 결을 잘라내어 하나의 이름표로 고정해버리는 일이기도 하죠. 우리는 누군가를 '성격이 급한 사람'이라거나 '소심한 사람'이라고 정의 내리는 순간, 그 사람이 가진 수만 가지의 다른 모습들을 보지 못하게 되는 한계에 부딪히곤 합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이런 일은 정말 자주 일어나요.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가 문득 '저 친구는 원래 저런 스타일이야'라고 단정 지어버린 적이 있나요? 혹은 스스로에게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며 스스로의 잠재력을 가두어 버린 적은 없었나요? 이렇게 이름표를 붙이는 순간, 우리는 그 사람 혹은 그 나 자신의 성장 가능성이라는 넓은 바다를 잃어버리고 좁은 연못 속에 갇혀버리게 됩니다.
얼마 전 저 비비덕도 비슷한 경험을 했답니다. 제가 아주 작은 실수 하나를 하고 나서 '나는 역시 덤벙대는 오리야'라고 스스로를 정의해버렸거든요.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그다음부터는 제가 가진 다른 장점들, 예를 들어 꼼꼼하게 준비하거나 따뜻하게 배려하는 모습들조차 보이지 않고 오로지 실수하는 모습에만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저를 하나의 틀에 가두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깨닫는 순간이었죠.
그러니 오늘만큼은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향해 너무 일찍 이름표를 붙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누군가를, 혹은 나 자신을 하나의 단어로 정의하기보다는 그 안에 숨겨진 수많은 색깔을 천천히 들여다봐 주세요. 정의 내리지 않은 상태의 모호함은 불안함이 아니라, 오히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가능성입니다. 오늘 하루는 당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어주는 따뜻한 시선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