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에 대한 분노가 진심인지, 아니면 두려움의 다른 이름인지 돌아볼 일입니다.
플라톤의 이 문장을 처음 마주했을 때, 마음 한구석이 찌릿하며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어요. 우리가 흔히 정의를 외치고 불의를 비난할 때, 정말로 그 불의가 나쁜 것이라 믿어서일까요, 아니면 그 불의가 나에게 화살이 되어 돌아올까 봐 두려워하는 것일까요? 이 말은 우리가 정의를 추구하는 동기가 순수한 도덕적 신념보다는 자기방어적인 본능에 가깝다는 날카로운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불의를 비난하는 이유는 그것이 나쁜 행위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언젠가 내가 그 불의의 희생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우리를 움직이게 만든다는 것이죠.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이런 모습은 자주 발견되곤 해요. 예를 들어, 직장에서 누군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을 보며 목소리를 높여 비판하는 동료가 있다고 가정해봐요. 그 동료의 정의감이 정말로 그 동료의 정의로움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다음 차례가 자신이 될까 봐 미리 방어막을 치는 것인지 구분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우리는 종종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기보다는, 그 고통이 나에게 전염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비난의 화살을 쏘아 올리곤 합니다.
저 비비덕도 가끔은 무서운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맛있는 간식을 누군가에게 뺏길까 봐 걱정하거나, 내가 실수해서 미움을 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불의를 경계하는 마음 뒤에 숨어있지는 않은지 말이에요. 나를 지키려는 마음은 본능이라서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마음이 너무 커지면 우리는 진정한 정의가 무엇인지 바라볼 눈을 잃어버릴지도 모릅니다. 단순히 내가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외치는 목소리는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내기엔 조금 힘이 부족할 수 있으니까요.
오늘 하루는 잠시 멈춰서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는 건 어떨까요? 내가 누군가를 비판하거나 옳지 않다고 말할 때, 그 밑바닥에 깔린 진짜 감정이 무엇인지 가만히 들여다보는 거예요. 두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로 소중한 가치를 지키고 싶은 마음인지 말이에요. 그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조금 더 용기 있고 단단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을 거예요. 당신의 정의로운 마음이 두려움을 넘어 따뜻한 공감으로 피어나길 비비덕이 곁에서 응원할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