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눌렸던 내면의 아이에게 다시 목소리를 허락하는 것이 치유이다.
벨 훅스의 이 문장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음 한구석이 아릿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많은 남성들이 어린 시절 자신의 슬픔이나 두려움, 혹은 서운함을 표현했을 때 '남자는 울면 안 돼'라거나 '씩씩해야지'라는 차가운 반응을 마주하며 입을 닫아버리곤 하죠.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강함이라고 배운 아이는 결국 자신의 진실한 마음을 숨기는 법을 먼저 배우게 됩니다. 하지만 이 문장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 상처 입은 내면의 아이가 결국은 치유될 수 있다는 희망을 우리에게 건네주고 있어요.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이런 모습은 자주 발견되곤 해요. 직장에서 힘든 일이 있어도 묵묵히 참아내는 팀장님, 혹은 가족 앞에서는 항상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눈물을 삼키는 아버지의 뒷모습 같은 것 말이에요.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고 믿으며 살아온 사람들에게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내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숙제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감정을 억누르는 것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마음 깊은 곳에서 알고 있지 않나요?
제 친구 중 한 명도 아주 오랫동안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왔어요. 화가 나거나 슬플 때도 그저 덤덤한 척 웃어넘기곤 했죠.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가 아주 작은 서운함을 용기 내어 말했을 때 저는 그가 얼마나 큰 용기를 냈는지 느낄 수 있었어요. 그 작은 고백이 시작점이 되어, 그는 조금씩 자신의 아픔을 돌보고 타인과 진심으로 연결되는 법을 배워나가고 있답니다. 상처를 마주하는 것은 아프지만,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온전한 나 자신으로 성장할 수 있어요.
오늘 하루, 혹시 당신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싫어 꾹꾹 눌러 담아둔 마음이 있나요? 아주 작은 감정이라도 괜찮으니, 스스로에게 먼저 말을 건네보았으면 좋겠어요. '그때 참 힘들었지', '지금 조금 슬퍼도 괜찮아'라고 말이에요. 치유는 자신의 진실한 목소리를 들어주는 아주 작은 용기에서부터 시작된답니다. 비비덕인 저도 당신의 그 소중한 마음을 언제나 따뜻하게 응원하고 있을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