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연인을 가족으로 바꾸어도 사랑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헬렌 로랜드의 이 문장은 참 씁쓸하면서도 묘하게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사랑의 설렘과 뜨거움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이 마치 신경이 뽑혀 나간 듯한 무미건조한 의무감뿐이라는 표현은, 관계의 권태로움을 아주 날카롭게 꿰뚫고 있죠. 우리가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할 때는 세상의 모든 빛이 그 사람을 향해 있는 것 같지만, 시간이 흘러 일상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새 사랑보다는 책임과 익숙함이 그 자리를 대신하곤 합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이런 순간을 자주 마주하곤 해요. 처음 연애를 시작했을 때는 상대방의 작은 손짓 하나에도 가슴이 뛰고 밤을 지새우며 대화 나누는 게 즐거웠지만, 결혼이라는 현실의 무게가 더해지면 어느덧 눈앞의 상대는 대화의 대상이라기보다 함께 가계를 꾸려가고 아이를 키워내는 공동 운영자처럼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퇴근 후 지친 몸으로 마주 앉아 나누는 대화가 설렘보다는 오늘 하루의 고단함을 공유하는 생존 보고서처럼 변해버리는 그 허무함 말이에요.
제 친구 중 한 명도 비슷한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어요. 남편과의 관계가 너무나 평온하지만, 동시에 너무나 건조해서 마치 정해진 궤도를 도는 행성 같다고요. 뜨거운 열정은 식었지만 대신 그 자리에는 서로를 향한 깊은 신뢰와 묵묵한 지지가 남았다고 말하면서도, 문득문득 찾아오는 그 공허함을 숨기지 못했죠. 하지만 저는 그 친구에게 말해주고 싶었어요. 신경이 뽑혀 나간 듯한 무감각함이 찾아왔다면, 그것은 어쩌면 새로운 형태의 사랑을 준비하는 휴식기일지도 모른다고 말이에요.
사랑의 형태는 변할 수밖에 없어요. 뜨겁게 타오르는 불꽃이 지나간 자리에는 따뜻한 온기를 머금은 숯불이 남듯, 설렘이 사라진 자리에는 서로의 존재를 당연하게 여기는 평온함이 깃들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의 관계가 조금은 무미건조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이 사랑의 끝이 아니라 익숙함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시작임을 기억해 보세요. 오늘 저녁, 배우자의 손을 따뜻하게 한 번 더 잡아주며 아주 작은 다정함을 건네보는 건 어떨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