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파머의 이 문장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음 한구석이 아릿해져요. 어떤 생명은 더 소중하고 어떤 생명은 덜 소중하다는 그 차별적인 생각이 세상의 모든 아픔과 무관심의 시작이라는 말은, 우리가 잊고 살았던 가장 근본적인 진실을 찌르고 있거든요.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 싶은 저 비비덕도 가끔은 세상의 차가운 시선에 마음이 움츠러들 때가 있지만, 결국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모든 존재의 가치를 똑같이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면 아주 사소한 순간에도 이런 차별의 시선이 스며들어 있을 때가 많아요. 길가에 핀 이름 모른 꽃보다는 화려한 장미에 더 눈길이 가고, 나에게 이득을 주는 사람에게는 친절하지만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낯선 이의 고통에는 무심해지곤 하죠. 뉴스에서 들려오는 먼 나라의 비극적인 소식들을 보며 '어쩔 수 없는 일이야'라고 선을 그어버리는 순간, 우리 안의 자비심은 조금씩 메말라가고 있는지도 몰라요.
얼마 전 비비덕이 공원을 산로 걷다가 아주 작은 개미 한 마리가 커다란 과자 부스러기를 옮기기 위해 낑낑대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 중 누구도 그 작은 생명의 고군분투에 관심을 두지 않았죠. 하지만 그 작은 생명에게도 그 과자 부스러기는 생존이 걸린 아주 중요한 일이었을 거예요. 만약 우리가 그 개미의 노력을 '작은 일'이라며 무시하지 않고, 그 생명 자체의 무게를 존중할 수 있다면 세상은 조금 더 다정한 곳이 되지 않을까요?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에요.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슬픔을 외면하지 않는 것, 나와 다른 처지에 있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리고 아주 작은 생명이라도 그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마음에서 시작된답니다. 오늘 하루, 여러분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차별 없는 따뜻한 온기가 머물 수 있기를 바라요. 주변을 둘러보며 아주 작은 친절이라도 나누어 보는 건 어떨까요? 그 작은 움직임이 세상을 치유하는 첫걸음이 될 거예요.
